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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는 세상

대학, 그 존재에 대해 묻는다. -진학과 취업

평소 관심있게 보고 있던 xeraph님의 블로그에서 재미있는 글을 보게 되어 몇자 소견을 적어본다.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업계에 쓸만한 개발자가 없어지는 상황에 대해서, 취업학교로 전락하고 있는 대학교, 그리고 전공보다는 영어점수, 학점 등 스펙에 열올리기는 학업 분위기, 복잡해진 기술과 너무나 쉬워져 버린 컴퓨터(컴퓨터를 이용하는 데 있어서 공부할 필요가 없어진) 등의 이유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폭발적인 덧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어 있다. 여기에 비전공 분야에서 독학으로 프로그래머를 지향하는 나로서 컴퓨터 분야가 아닌 내 전공인 '농공학(농토목)'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우선, 내가 다니고 있는 학과에 대해 간략히 정황을 설명하자면, 1학년 때는 학부로, 2학년 때부터 전공이 배정된다. 2, 3학년 전공 수업을 이수하고 나면, 4학년 때는 크게 2가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취업이냐? 진학이냐?
취업 라인에 선 학생들은 전공 수업을 최소화하고, 도서관에 거주하며 영어점수와 학점, 경력(인턴, 봉사활동), 자격증 등의 스펙 올리기에 열중하게 되고, 반대로 진학 라인에 선 학생들은 전공 수업과 대학원 연구실에서 연구 보조를 하며 지내게 된다.

진학 라인에 대해서는 (내가 계속 공부를 하고 있어서여서일지 모르겠지만) 앞서 xeraph님이 제시한 문제와는 크게 연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취업 라인에 대해서는 몇 자 논해 볼 수 있을 거 같다.

취업, 물론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스펙만으로 평가하고, 평가받는 시스템에서는 어느 누구도 승자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전공에서는 졸업 후 일반 토목회사나 시공회사에 취직하게 되고, 꽤나 좋은 보수를 받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취업하는 학생들이 과에서 성적순으로 상위 50%에 드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하위 50%의 학생들이 진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딱 떨어지는 수치라기 보다는 느낌상의 수치임을 감안해 주시길...) 이게 똑똑하고 열심히 하는 학생은 취업하고, 놀다가 학점 안좋고 대안 없는 학생들은 진학을 하는구나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은 학점에 목적이 있다. 하지만 진학을 목표로 두는 학생은 배움에 목적이 있게 된다. 시험을 배움의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지만, 시험 점수와 앎의 정도가 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잘 알 터이다. 특히나 시험이라면 국내에서 몇% 안에 드는 사람들만 모아놓은 곳이니... 학생들이 양극화되다보니 커리큘럼도 양극화 되어 간다. 취업하는 학생들은 취업에 유리한 과목, 검증(실용화)된 기술을 요구하게 되고, (예를 들어 공학인증과 같은) 진학하는 학생들(학생의 요구라기 보다는 교수님들이 학과의 내실을 위해 요구하는 것)은 기초학문과 최신 이론/연구 등의 과목을 요구하게 된다. 마치 컴퓨터 공학과에서 프로그래밍 언어 시간에 php나 vb 코딩을 가르치는 것과 컴파일러, OS, DB 이론 등을 가르치는 것 사이의 차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대학 진학율이 90%에 육박하는 나라에서 내실있는 대학교육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기술을 가르칠 곳과 학문을 배울 곳이 구분되어야 하나, 대학은 다 같은 대학이고, 그 간판에 따라 차별받는 불합리한 조직이라고만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나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대학 같은 대학이라면, 학문을 하라고. 그리고 기술을 가르칠 대학이라면, 더 철저히 기술을 가르치라고. 그리고 학문을 하는 대학을 표방하려 하지 말라고. 내가 살던 곳 진주에는 '연X공업전문대학'이라는 곳이 있다. 자세히는 모르나, 내가 알고 있기로는 LG 계열사와 연계되어 있어 연X공전 출신의 경우 취업이 다소 용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즉, 기업에서 이미 사내 교육을 학교를 통해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학에서 짧은 시간동안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S대 다니면서, 남들이랑 똑같이 취업준비해서 남들이랑 똑같은 기업에 똑같이 들어가는 건 너무 비겁한 거 아닌가? (물론 글을 읽기에 따라 기분나쁘거나 나를 극우로 볼 지 모르겠지만) 분명 취업이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학문을 가르치는 곳에 와서(학문을 하고 싶은 수많은 학생들을 물리치고) 가르치는 거 제대로 못 받아 먹고, 시험만 잘봐서 거기에 학교이름 얻어서 취업원서 쓰는 게 비겁하지 않냐는 것이다.

학교의 존재 이유는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 아닐까?
제발,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대학들이라면, 취업전문학원 같은 행태에서 벗어나 주길 바란다.
마찬가지로 기업에서도 대학을 분리해서 선별하는 혜안을 요구해본다.(대학 줄세우기를 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학문을 하는 대학 출신이라면, 연구나 회사가 나아질 수 있는 데 인재를 활용하는 방안을,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대학 출신이라면 회사가 실제 움직이고 실행하는 데 필요한 인재를 뽑아서 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어떨까라는 것이다.)